피리 부는 사나이

Dairy 2008/06/04 14:25
어젯 밤..

여느때 처럼, 잠들기전 침대에 나란히 앉에 책을 읽던 신랑과 나는

내가 막 새로 읽기 시작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Don't Think of Elephant)"라는 책의 서문에서,

"저자 레이코프는 (중략) 피리 부는 사나이임을 자처하고 있다. (중략)" 라는 부분이 나오길래

나는 신랑에게 물었다.



"신랑~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어떤 사람이예요?"

"음.. 그러니까 말야~ 어렸을때 읽어서 잘 생각은 안나는데,,

  암튼 핵심은, 그 사나이가 피리를 불어서, 쥐들을 다 마을 밖으로 몰고 나갔다는 거야 `ㅡ` "

"-_-;;... 그럼 그 '쥐'들은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던거고?"

"끄덕"



@.@;; 이리하야,

일단 피리 부는 사나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혹은 문제가 되는) 것을 싸안고 떠난 인물이라고만 이해를 하고 넘어갔더랬다.


오늘,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확인한 결과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말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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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1:
(출처: 네이버 지식인 -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l9f+9/25JfWiQHKQGDy6YRMSV/xQp4oj&qb=x8e4riC6zrTCILvns6rAzA==)

<< 질문 >>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란 책을 일고 있는데여...

이 시대의 시대적 배경이 중세시대가 맞나요??

맞다면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좀 갈켜주세요~~!!


<< 답변 >>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배경은 중세시대입니다.

쥐 때문에 아주 골치를 썩던 시대였죠.

그때는 유럽전역에 흑사병이 창궐해서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어느 지역은 인구의 2/3가 사망한곳도 있다고합니다.

흑사병은 쥐가 먼저 감염되고 그 균이 공기중에 퍼져서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고 사람들은 까맣게 변해서 죽는다고 흑사병이죠.

전설에 따르면 시장이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쥐를 쫓아주는 댓가로 막대한 상금을

주기로 했고 사나이는 약속대로 쥐를 쫓아주지만 시장은 약속을 지키지않죠.

그러자 사나이는 피리를 불어 하멜른의 모든 아이들이 자신을 따르게 합니다.

그리고 다리를 저는 아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그 사나이를 따라 숲으로 사라집니다.

사라진 숲에서 그 아이들은 악마의 부엌이라는 곳에서 제물로 바쳐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주 먼곳으로 떠났다는 말도 있는데 헝거리 어느 산속 마을에는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있다는군요.

그 피리쟁이를 따라간 아이들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발췌2:
(출처: 네이버 지식인 -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2&eid=fYcYxBbjoCubrypoLVA+lTR1JzbbJYXP&qb=x8e4riC6zrTCILvns6rAzA==)

<< 질문 >>
(중략)
옛날 중세시대(?)에 프랑스 어느 도시에서 쥐가 도시를
뒤덮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자에게 막대한 상금을 준다고
했다던데요,
어느 피리부는사나이가 피리로 쥐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고하는데요 ㅡ,.ㅡ;;;
그 후 돈을 지불하기 싫어서 마을사람들이 피리부는
사나이를 쪼ㅈ아냈다고.....
화난 피리부는 사나이가 또다시 그의 피리로(?)ㅡㅡ;;;
마을 아이들을 꼬셔서 어디로 사라졌다고....
(중략)
위의 이야기 사실인가요?

<< 답변 >>
일단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쪽의 전설입니다. 하멜른은 독일의 도시이지요. 이 사건을 기술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사건이 일어난 뒤 150년쯤 뒤에 쓰여진 라틴어 문서입니다(1936년 발견). 어떤 책에서는 폰 루덴 부인이라는 목격자가 아이들이 떠나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을 하고 있고, 1300년에 하멜른 사람들이 그 사건을 기념한 스테인드 글래스를 설치했다고도 합니다. 스테인드 글래스는 17세기에 사라졌지만 당시 기록에 따르면 '아이들은 온갖 위험을 이겨내고 코펜까지 걸어갔으나 거기서 행방을 감추었다'는 문장이 쓰여져 있었답니다. 아직도 하멜른에 남아 있는 '피리부는 남자의 집'이란 건물에 새겨진 시는 좀더 구체적으로 '코펜 근처의 칼바리'라는 지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칼바리(Calvarie)'는 처형장을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실화였을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인 의견으로 이 이야기는 두 개의 이야기가 결합된 동화라고들 합니다. 중세의 도시 중에는 실제로 쥐떼 때문에 골치를 앓는 곳이 많았고, 그만큼 쥐 잡는 전문가들도 많았습니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쥐 잡는 비법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도 상당히 만들어졌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 또한 드물지 않습니다(개구리 소년 사건처럼...) 이 두 이야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기이하고 섬뜩한 이야기...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학자들은 17세기부터 아이들이 '동쪽'으로 갔다는 대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독일의 여러 도시들은 인구 폭발 때문에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독일 동쪽의 헝가리나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타타르족이 침입하여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독일에서 사람들이 이민해 오는 것을 매우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도 독일에서 그쪽으로 옮겨간 사람 중 하나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아이들도 아주 어린 아이들은 아니겠지요. 이민 가는데 코흘리개를 데리고 갔을 리도 없을 테니. 하지만 전설이라는 건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 10대 청소년 실종사건보다 어린아이들 실종사건이 더 서스펜스 있잖아요.

하멜른 사건 연구가 한스 도버틴이라는 사람은 피리부는 사나이가 니콜라스 폰 슈피겔베르크 백작이라고 주장합니다. 독일의 귀족인 그는 기록에 의하면 1284년 7월 8일 발트 해안의 슈테틴 항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아이들이 사라지고 나서 꼭 12일째 되는 날이랍니다. 그리고 슈테틴 항구는 하멜른 마을에서 약 40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서 걸어서 간다면 대충 12일쯤 걸립니다. 니콜라스 폰 슈피겔베르크는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하멜린과 폼메른 사이를 왕래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하멜른의 꿈많은 청소년들에게, 동쪽으로 가서 야망을 펼쳐보라고 유혹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당시 폴란드의 폼메른 주 해변의 코판 근처 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멜른에서 동쪽 방향에 있는 폼메른의 코판, 그리고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코펜 언덕... 뭔가 유사점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도버틴의 주장을 확인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습니다만, 이 주장은 지금까지 제시된 하멜린 사건에 대한 설명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이라는군요.

한편, 그림 형제의 동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에 의하면 아이들은 트랜실바니아로 통하는 지하통로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트랜실바니아는 루마니아의 지명이지요. 옛날에 어디서 읽었는데(출처 기억 안 남), 트랜실바니아에는 언제 어느때인지 모르지만 독일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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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음지기